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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s Insights

도망칠 수 없는 기술의 언저리, 그 컨버전스의 숙명

도망칠 수 없는 기술의 언저리, 그 컨버전스의 숙명

 

광고계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은 늘 세상보다 반 발자국 앞서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반 발자국을 유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마모시킨다. 세상의 모든 변화를 따라잡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IT가 그렇다. 익숙해질 만하면 새로운 것이 튀어나오고, 이사하듯 플랫폼을 옮겨 다니는 일상은 뒤죽박죽이다. 정돈과 축적을 선호하는 내 성향에 이 소모적인 반복은 도저히 유쾌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의 전략은 언제나최소 접촉이었다.

 

돌이켜보면 고2 때 진로 갈등 속에 이과에서 문과로 바꾼 선택은 단순한 방향 전환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과적 구조와 문과적 언어가 공존한 채,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일하게 될 삶의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처음엔 댓글 공작에 대한 우려로 사이버 보안에 관심을 가졌고, 우연히 전문가와 인연이 닿아 다양한 층위의 작업을 함께했다. 그러나 그때도 나는 새로운 플랫폼이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세계가 피곤했다. 적어도 내 생애에서는 온라인을대충 쓸 줄 아는 정도에서 멈추고 싶었다. PCS KT 광고를 맡았을 때만 해도 연구소를 들락거리며 공학박사들과 대화하는 열성을 보였지만, 점차 본질적으로는 첨단기술의 언저리에서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발만 걸치고 지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살았다. 그것 말고도 머릿속에 채워 넣고 싶은 것은 많았으니까.

 

하지만 운명처럼 나는 계속 기술과 맞닿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사이버 보안에서 시작해 블록체인, NFT, 메타버스, STO, 그리고 데이터센터까지. 광고 마케팅이나 금융도 예외는 아니었다. 핀테크와 토큰 이코노미, 자산 밸류에이션을 다루는 프로젝트들은 모두 기술(IT)을 통해 확장되었다. 심리학과 문화콘텐츠를 연계한 심리 치료 프로그램은 종국에 뇌과학으로 흘러가 뇌파 장비 설계자들과 소통하게 만들었다. 브랜딩 또한 인간의 인지를 설계하는 일이며, 그 설계는 애드테크와 플랫폼 없이 구현될 수 없다. 정치학과 국제정치경제를 말할 때조차 STS(과학기술학)와 플랫폼, 뇌인지과학을 거쳐야 한다. 이제는 LLM과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포함하지 않으면 논점 자체가 닫히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결국 나는 늘 컨버전스의 접점, 기술과 인문사회적 영역이 충돌하고 융합되는 바로 그 자리에 서 있게 된다. 문화와 정치, 커뮤니케이션을 논하며 인문학적 담론을 꺼내놓아도, 그것이 구체화되는 순간 논의는 기술 파트의 설계로 넘어간다. 해석권력, 신뢰, 정체성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들이 실제로는 플랫폼 알고리즘과 데이터 구조, 인프라 설계의 언어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는 아날로그를 지향하면서도 늘 디지털의 가장 첨예한 최전선에서 일해온 셈이다. 참 모순적인 삶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끔 민망해진다. 인지 자원을 아끼려 했던 과거가 게으른 변명이 아니었을까 자문하기도 한다. 기술적 메커니즘을 관찰자 입장에서 이해할 뿐, 그것을 온전히 내 것으로 체화하려는 노력은 의식적으로 미뤄왔다. 피하고 싶었으나 단 한 번도 완전히 피한 적은 없었고,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전문성이 쌓였다. 프레딕티브 프로세싱(Predictive Processing), 소버린 AI, LLM 파인튜닝, GPU 클러스터 같은 어휘들을 다룰수록이해체득사이의 간극은 더욱 선명해진다우습게도 현장에서는 내가 그 언어를 완벽히 장악해야만 일이 굴러간다. PCS 광고 시절부터 지금까지, 결국 설계자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야 결론이 난다. 그러니 나는 기술 언어를 과시용으로 휘두르지 않고, 그저 필요한 만큼만 정확히 이해하고 붙잡아,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나의 언어로 번역해 쓸 뿐이다.

 

주변에선 은퇴 소식이 들려오고, 한편에선 100세 시대라고들 한다. 슬슬 공학적 전문성에 대한 압박을 내려놓고 싶다는 꾀가 나다가도,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어쩌면 지나온 날보다 더 많이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젠장, 게다가 박사학위 논문은 인지전(Cognitive Warfare)이고, 지금 몸담은 일조차 데이터 기반의 인덱스 사업화다. 평생을 이 언저리에서 버텨왔는데, 이제는 정말 도망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할 모양이다. 다만 모든 기술은 사회 안에서 인간이 사용한다는 전제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주객전도를 경계한다.

 

결국 기술과 접목되는 전반적인 흐름은 STS이며, 사업과의 접점에서 이는 필연적으로 거대 자본과 연결된다. 모든 니즈가 사업화되는 과정은 기술과 만나고, 그 과정은 다시 자본과 조우한다. 내가 다뤄온 문화, 정치, 치유 같은 의미의 언어들은 플랫폼, 데이터, 인프라, 지표(Index)라는 기술적 매질을 통과하지 않으면 결코 완결되지 않는다. 이는 기술이 단순한 중립적 도구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권력의형성 조건이라는 STS의 고전적 질문과 맞닿아 있다.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아니라, 기술이 무엇을 가능하게 설계하는가, 그리고 그 설계가 누구의 현실을표준으로 삼는가를 묻는 자리. 그 지독히도 기술적인 자리에 지금 내가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