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는 다양성을 미덕으로 여기며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다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배운다.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는 문명 사회의 핵심 조건이지만, 정작 우리 일상의 소통 현실은 이 미덕의 내용을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 말은 넘쳐나지만 이해는 없고, 연결은 증가했지만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단히 많은 신호를 주고받는 것처럼 보이나, 그 속에는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 디지털 사회는 이러한 착시를 끊임없이 확대하며, 우리는 소통이 일어나는 듯한 감각만을 소비한 채 실제 소통의 핵심인 의미의 교환은 거의 이루지 못하는 아이러니 속을 살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차이를 인정한다"는 말이 종종 상대에 대한 이해를 중단해버리는 태도로 변형되곤 한다. 상대 의견에 질문하거나 설명을 요청하는 것 자체를 불편함이나 간섭으로 간주하는 분위기 속에서, 차이 인정은 사실상 "그냥 서로 건드리지 말자"는 방치로 이어진다. 그러나 의견은 단지 결론에 불과하다. 그 결론은 어떤 정보, 경험, 감정적 조건에서 비롯되었는가에 따라 달라지며, 결국 이해라는 더 근원적인 구조를 통해 형성된 각 개인의 주관이다. 의견 차이가 있으면, 서로가 어떤 이해를 기반으로 서로 다른 의견을 갖게 된 것인지 그 층위를 살피고 이해의 차이를 줄인 후 도출된 서로의 의견 차이에 대해 인정하는 행위가 비로소 상대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태도다. 이해 구조를 교환하는 과정 자체도 서로의 영점을 조정하는 과정이어서 빈번한 피드백과 그 자체로도 상당한 에너지를 요한다. 그러니 이해 차이가 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의견 차이는 서로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게 하고, 더 직접적으로 충돌하며, 그 충돌은 쉽게 정체성의 공격으로 해석되어 관계는 쉽게 단절된다.
우리는 조정을 흔히 타협, 설득, 양보 같은 '결론의 조율'로 이해한다. 그러나 조정의 핵심은 서로의 의미 구조를 파악하고, 그 구조 사이에 존재하는 이해의 간극을 좁히는 일이다. 사람은 동일한 말을 듣고도 각자가 가진 경험, 맥락, 세계관의 차이 때문에 다르게 이해한다. 조정이란 바로 그 차이를 설명하고, 상대가 왜 그렇게 이해했는지를 파악하며, 나의 이해와 그의 이해가 어떤 지점에서 갈라졌는지를 복원하는 과정이다. 이 정서적/인지적 노력이 이루어지면 의견이 달라도 관계는 무너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의견이 상대를 공격하거나 관계를 파괴하는 요소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해 조정이 사라진 관계에서는 사소한 의견 차이조차 폭발적으로 충돌하며, 상대의 말을 해석할 맥락이 없기 때문에 의견 자체를 정체성의 선언처럼 받아들인다.
존중은 원래 타인의 감정, 이해, 맥락을 고려하며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능동적인 태도를 의미했다. 그러나 현대의 존중은 '간섭하지 않기', '불편하게 하지 않기'의 의미로 축소되었다. 디지털 소통 환경은 음색, 표정 등 뉘앙스를 제거하고 의미를 조율할 수 있는 여지를 최소화한다. 사람들은 조정을 멈추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여기며, 그 회피를 "존중"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그러나 조정 없는 존중은 이해 교환을 중단시키고 오해를 누적시킨다. 갈등은 내부에서 압력을 키우며 축적되다가 갑작스럽게 폭발하거나 경고 없이 관계를 단절시킨다. 존중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회피는 결국 공동체의 신뢰와 감정 회로를 서서히 마비시킨다.
공동체는 의견의 일치가 아니라 공통 기준(consensus)으로 유지된다. 이 기준은 서로의 이해 구조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지만, 이해 조정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공통 기준이 더 이상 형성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각자의 세계 안에서만 의미를 구성하며, 사회는 서로 다른 세계들이 병렬적으로 존재하는 상태가 된다. 피드백이 사라지면 감정 연대가 단절되고 공동체는 파편화된다.
현대인의 소통은 디지털 시대의 구조에 의해 조정 능력을 발휘할 여지를 빼앗기고 있다. 맥락이 삭제된 환경에서 개인들은 관계의 축적보다는 단절을, 공동체의 지속보다는 개인의 생존을 우선하는 자기 보호적 생존 전략을 선택한다. 차이를 인정한다는 말은 거리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차이 인정을 조정의 포기로, 존중을 회피와 동일시하는 방식으로 왜곡해왔다.
공동체는 서로의 이해 구조를 조정하려는 노력 위에 세워진다. 우리는 의견을 맞출 필요는 없지만, 이해의 간극을 좁혀야만 한다. 이 이해의 조정이야말로 공동체가 지속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조건이다. 오늘의 사회가 회복해야 하는 것은 서로의 세계에 대한 이해의 간극을 조정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을 잃은 사회는 갈등을 관리하고 신뢰를 축적하며 공동체를 유지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