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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만들지 말라는 말

graceshin 2026. 4. 8. 23:31

적을 만들지 말라는 말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적을 만들지 말라고.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고, 업계는 좁고, 한 번 지나간 인연도 다른 얼굴로 의외의 자리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실제로 그렇다. 내가 은행에 다닐 때의 상사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마음 상하는 일이 많아 큰맘 먹고 회사를 옮겼는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인수합병이 되면서 떠나온 회사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또 다른 동료는 다니던 은행이 파산해 다른 곳으로 인수된 뒤, 다시 인수합병을 거치고 또 재편을 겪으면서 결국 피피인수합병은행 출신이라는 애매한 위치를 떠안게 되었다고 했다. 우스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 나라의 업무 세계는 생각보다 좁고, 특히 이직을 하더라도 비슷한 업무영역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잦아, 관계가 끝난 줄 알지만 돌고 돌아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다.

그러니 사람들은 원만하게 지내라고 말한다. 그 말은 틀리지 않다. 다만 자주 오용된다. 적을 만들지 말라는 조언은 본래 품위를 잃지 말라는 뜻에 가깝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무례를 참으라는 말로, 선을 넘는 사람에게도 끝내 예의를 다하라는 말로 변질된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늘 대개 성찰적인 사람이 관계의 비용을 떠안게 된다. 내가 놓친 맥락이 있나 먼저 생각하는 사람, 남을 함부로 악인으로 단정하지 않는 사람, 혹시 내 반응이 과했나 돌아보는 사람. 이상한 일을 당하고도 바로 분노하지 못하고 먼저 해석하려 드는 사람 말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주변의 평판이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인간성 좋고 털털하다고들 한다. 그러니 연락이 왔을 때 한 번쯤 만나 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내 경우엔, 첫 만남부터 무례했다. 삼십 분이나 늦었고, 만나자마자 술을 마셨고, 취해서 자리를 파하게 만들었다. 정작 본론은 말하지도 못한 채 자기 이야기만 두 시간을 넘게 했다. 지금 보면 거기서 이미 끝났어야 할 관계다. 그러나 그때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이상하면 오히려 즉시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내가 모르는 맥락이 있겠지, 저렇게 처신하고도 주위의 인맥을 잃지 않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면 내가 성급한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종종 간과하는 것은 평판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술한가 하는 점이다. 특정한 페르소나는 늘 양면을 갖는다. 털털하다는 평은 무례함과 붙어 있고, 스스럼없다는 말은 경계 감각의 부재와 이어져 있으며, 근성 있다는 소리는 집요함으로 뒤집힌다. 관계를 잘 챙긴다는 평판 역시 마찬가지다. 때로 그것은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비집고 들어오는 태도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대체로 타인을 따뜻함과 유능함의 축으로 빠르게 판단하고, 한 번 형성된 긍정적 인상은 이후 행위 전체를 그 인상에 맞춰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이미 사람 좋은 사람, 털털한 사람, 관계 잘하는 사람으로 분류되어 있으면 그 사람의 무례는 개성으로, 집요함은 성의로, 침범은 친화력으로 잘못 해석되기 쉽다.

그다음이 더 피곤하다. 공적인 관계처럼 말을 걸어오지만 실제로는 사적 경계를 반복해서 넘는다. 연락 시간은 일정하지 않고, 사업 이야기를 섞어 접근하지만 늘 어딘가 불편한 말이 묻어 있다. 선을 그어도 멈추지 않는다. 직접 연락이 막히면 다른 길을 찾는다. 예전에 내가 사업상 도움이 될 것 같아 소개해 준 지인을 통해 다시 연락이 닿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그 지인에게 업계가 좁으니 필요한 선에서 알아서 관계를 유지하시라, 다만 나는 더 이상 그 사람과 연관되고 싶지 않으니, 나와 관련한 전달이나 연결은 삼가 달라고 했다.

이쯤 되면 관계의 문제라기보다 비용의 문제다. 선 넘는 사람 하나는 시간만 잡아먹지 않는다. 감정비용을 발생시키고, 주의력을 소모시키고, 평판관리 비용을 요구한다. 불편한 연락 하나가 하루 종일 언짢은 감정으로 긴장하게 만들고, 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반복해 생각하게 만들고, 공적 관계에 흠이 갈까 문장을 고르게 만든다. 부정적 관계는 사람의 심리적 안녕과 일상 기능에 실질적 비용을 남길 수 있다는 연구가 축적되어 있다. 관계는 자산이기도 하지만, 잘못 엮이면 지속적인 적자가 된다.

그런데 더 잔인한 것은 그다음이다. 좋은 평판을 가진 사람 앞에서 피해자는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라 설명의 당사자가 된다. 기존의 인간관계가 얽혀 있으니 불편한 감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말할 수도 없고, 설령 말한다 한들 돌아오는 반응 때문에 더 불편해진다. 왜 한 번 더 만났느냐, 왜 초기에 바로 끊지 않았느냐, 왜 답장을 했느냐, 정말 그런 의도였는지 확인해 봐야 하지 않느냐. 3자들은 사실 확인을 한다며 심판자가 되려 든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대개 공정하지 않다. 피해자에게만 더 많은 설명과 더 긴 해명을 요구한다. 폭력 피해 공개 뒤 주변의 반응을 다룬 연구들은 축소, 불신, 통제, 피해자 비난 같은 부정적 사회반응이 피해자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키고 회복을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피해자는 자기가 겪은 일을 말하고 이해 받는 사람이 아니라, 왜 그때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해명하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입을 닫게 된다. 연락처를 차단하고 관계를 단절한다. 저 사람 평판이 이렇게 좋은데 내가 말해 봐야 이상한 사람만 되겠지. 이 생각이 틀린 것도 아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반복된다. 가해자는 활개치고 다니며 먼저 말을 만든다. 또 대부분 발화의 영향력도 더 크다. 상대가 예민했다, 소통이 안 됐다, 자기가 오히려 상처를 받았다고 말한다. 피해자가 조용한 동안 평판은 가해자의 방패가 되고, 피해자의 침묵은 다시 그 평판을 강화한다. 이 구조 속에서 제2, 3차 피해가 생긴다.

그러다가 지속되는 가해자의 깐족임에 가까운 자극에 발끈하게 되기도 한다. 왜곡된 자기상을 바로잡고 싶어하는 자연스런 심리다. 다만 그런 상대에게는 해명이 아니라 새로운 빌미를 제공할 뿐이어서 불필요한 일이다. 상대에게는 차단이 답이고, 정정이 필요하다면 나를 위해 기록차원에서 남기면 된다.

특히 사회초년생일수록 이런 상황 앞에서 더 쉽게 곤란해진다. 지금 벌어지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판단이 서지 않거나, 이때 어떤 언행이 적절한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선은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이런 유사한 상황이 혼자만의 일이 아님을 알아야 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감정적 문제로 밀어두지 말고 무엇보다 먼저 장면마다 명명해야 한다. 무례는 무례라고, 침범은 침범이라고, 우회 접촉은 우회 접촉이라고, 피해자에게 설명을 강요하는 태도는 2차 가해라고. 이름을 붙이는 순간 사태는 조금 더 분명해진다. 동시에 그것이 해석의 주도권과 우위를 놓지 않으려는 권력구도의 문제로 객관화된다. 그때부터는 주변의 모든 행위자들도 자신이 어떤 구조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상대의 발언 중에서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은, 대학시절부터 굉장한 절친과 최근 절교했다는 사실이었다. 나도 아는 인물이었는데, 상대의 말에 따르면 그 친구는 자기 사업이 잘 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거리를 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성인이 어떤 관계를 단절할 때는 대개 이유가 있다. 남은 시간이 더 소중해질수록 소모적인 관계를 정리하기 마련이다.

침묵은 때로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반복 침범의 피해는 불안, 우울,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 자기비난과 이어질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사람은 스스로를 더 심하게 검열하게 된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내가 처음부터 단호하게 끊지 못해서 일이 커졌나. 내가 괜히 한 번 더 설명해서 여지를 준 건가. 그러다 보면 문을 닫아 거는 방향도 타인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게도 문을 닫는다. 비슷한 상황을 몇 번 겪고 나면 사람을 새로 만나는 일 자체를 줄이고, 낯선 관계를 믿지 않게 되고, 결국 자기 삶의 반경을 스스로 축소해 버린다.

그렇다면 이 부당한 판을 뒤집을 방법은 무엇인가. 솔직히 말해, 나도 정답은 모르겠다. 다만 이것이 어떤 상황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만은 알겠다. 힘들겠지만 객관화하고, 3자의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라는 것. 반복적이고 원치 않는 접촉은 개별 사건이 아니라 패턴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은 스토킹 연구와 실무 자료에서 공통으로 강조된다.

적을 만들지 말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그 말은 품위를 잃지 말라는 뜻이지, 선량한 사람들의 자기 경계까지 내어주라는 뜻은 아니다. 사회생활은 원만함을 요구할 수는 있어도, 침범을 감수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좋은 평판은 면죄부가 아니다. 피해자의 침묵은 동의가 아니며, 3자의 심문은 공정하지 않다. 판을 뒤집는 첫걸음은 내게 일어난 일을 내 반성적 언어가 아니라 구조의 언어로 다시 읽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대한민국 안에서 결코 혼자이지 않음을 먼저 신뢰하면 싶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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