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텀 구조설계: 문화와 정치, 콘텐츠 그리고 전략기획
“문화는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후에나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이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당시 도지사였던 한 정치인과 나눈 짧은 대화 속 이 말은 나를 깊은 침묵에 빠지게 했다. 이 말은 단순하게 이해가 부족해서 나온 표현이라고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이 사회의 집단적 인식이 얼마나 정치적 상상력에 무감각하고, 사회구조에 대한 이해 없이 ‘실용성’과 ‘당장의 성과’에만 몰두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생각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가진 보편적인 인식이라고 알고 있다. 이 말은 나의 존재 이유 — 전략기획자로서의 정체성과 역할,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문화와 정치, 공동체의 구조를 설계하고자 했던 나의 모든 철학과 실천을, 철저히 배부른 자의 취미생활이나 사치로 몰아가는 세상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문화는 인간종이 자연선택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수단이다. 언어를 통해 협력하고, 이야기를 통해 감정을 공유하며, 의례와 서사를 통해 공동체를 구성해왔다. 이 모든 것은 '문화'라는 이름 아래 작동해온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다.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을 가리켜 “생물학적으로는 약하지만, 문화적으로는 가장 유능한 생존자”라고 말했다. 사회학자 클리퍼드 기어츠는 문화란 단지 심미적 표현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고 행동하기 위해 얽어 놓은 의미의 그물망”이라고 정의했다. 문화는 곧 집단 생존을 위한 의미 설계 도구이며, 커뮤니케이션은 그 문화를 매개하는 실질적 방식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문화는 여전히 ‘부가적 영역’이나 ‘복지성 예산’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문화정책은 예술인의 생계 지원이나 관객 수 증대에만 머물고, 문화기획은 ‘공연기획’이나 ‘SNS 홍보’로 축소된다.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묻는다. “문화와 정치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콘텐츠 사업이 학문과 어떤 관련이 있느냐?”, “전략기획이 비즈니스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
이 질문 자체가 인간종 이해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자, 구조적 인식의 결핍이다.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한 정보 전달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과 집단 정서(감정), 의미와 권력의 흐름을 설계하는 상호구성적 매개체이다. 또 전략기획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기 전에, ‘왜 그 일을 해야 하는가’, ‘그 방향은 정당한가’, ‘그 이야기는 공동체에 어떻게 전달되고 인식되는가’를 묻는 일이다. 기획이란 본디 미래를 위한 밑그림이다. 구체적 실행을 위한 계획이 아니다. 그랜드 디자인의 형태로 먼저 말하게 되는 전략기획은 본질적으로 시간 지연(delayed return)을 전제로 한다. 즉, 설계된 구조가 작동하기 위해선 준비, 연결, 반복, 학습, 확산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대다수 조직은 이러한 ‘지속 가능한 구조 설계’보다는 즉각적인 반응, 단기 수치, 가시적 결과에만 몰두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해외파트너나 조직의 규모가 비교적 큰 파트너들과 협업을 해왔는데, 그들은 적어도 방향성과 구조의 언어를 이해하며, 그것이 단기성과로 환산되지 않더라도 장기적 맥락 속에서 설계된 기획의 의미와 가치를 받아들일 줄 알기 때문이다. 물론 이 환경은 나에게 더 나은 자율성과 확장성을 보장해준다. 해외에서 인정받고 채택되는 기획이 한국 사회에서는 정반대되는 평가를 받을 때, 나는 애써 설명을 하기보다는 그냥 입을 닫는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상업적으로 소모되기만 하는 듯한 K-콘텐츠를 보며 안타깝다.
지금 한국의 콘텐츠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콘텐츠는 문화 전체가 아니라, 문화 중 상품화 가능한 감정과 서사 조각의 일부일 뿐이다. 커뮤니케이션이 문화를 구성하는 메커니즘이라면, 콘텐츠는 커뮤니케이션의 구체화된 감각적 결과물이다. 그 차이를 모르면, 문화기획을 브랜드 캠페인 정도로 축소시키고,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홍보툴 정도로 격하시킨다. 그렇게 되면 콘텐츠는 소비의 대상이 되고, ‘집단정체성’은 피상화되어 ‘트렌디한 캐릭터성’으로 환원된다. 창작자는 플랫폼에 최적화된 포맷과 감정반응에 따른 재생산 알고리즘 안에 갇힌 채, 새로운 창작은 사라진다. 지금 우리가 겪는 창의력의 고갈, ‘공동체의 서사’가 몰입된 팬덤의 상업화로 변질, 창작 생태계의 피로감은 단지 약탈적 자본과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사유없는 인문자산의 고갈을 외면하고, 의미구조가 실종된 커뮤니케이션이 산업화되며, 유기적인 생태계를 고려한 깊이 있는 설계가 배제된 결과다. 콘텐츠를 말하는 전문가라면서 장시간 인문자산의 누적이 요구되고, R&D적 속성인 콘텐츠 숙성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산업의 현장에서 과실만 따려는 무임승차자의 즉시성과 가시성의 논리에 갇혀, 현재의 K-콘텐츠가 문화적 기반을 잃어간다. 거기에 장기적 안목과 문화적 이해가 부족한 이들에 의해 콘텐츠가 점점 더 우리의 삶에서 유리되고, 제 색깔과 방향을 잃어가는 것 같아 미래가 우려스럽다.
